토요일 밤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창문을 흔드는 바람과 함께 밤새 내렸다. 어렸을 때부터 비오는 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릴 적 기억 때문이었다. 비오는 날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에게는 공치는 날이었고, 자식들에게는 일을 못나간 속상함을 술로 달래며 술주정까지 하던 아버지가 좋게 보이지 않던 날이었다. 비오는 소리따라 지지직 소리내며 엄마가 부쳐주시던 김치 부침개, 부추전은 너무 맛있었지만 아버지의 술안주가 되기도 해서 비오는 날이 좋기도 싫기도 했다.
어제 오후 티비 뉴스에서 경남 하동의 지리산에 큰 산불이 났다는 소식이 흘러 나왔다. 80ha의 면적이 불에 타고 있다는 기자의 브리핑과 어둑해지는 시간에도 멀리서 벌겋게 타오르는 산자락이 훤한 대낮처럼 보이는 화면이 차라리 영화였으면 했다. 식구들끼리 어쩌냐, 큰 불이 나서 어쩌냐 한 마디씩 보태었지만 애끓는 마음이 그곳까지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아침 일찍부터 2시간 가까이 거리의 교회를 가려는데 비까지 오니 마음이 왔다갔다 했다. 비도 오고 날씨도 춥고 집을 나서면서 동생과 사소한 말다툼까지 이어지니 교회가는 길이 더욱 멀게 느껴졌다. 일정을 마치고 오후를 되니 굵은 비가 잦아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도 훨씬 수월해졌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걷던 동생이 내 귓가에까지 들리게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와, 비가 와서 지리산 산불이 꺼졌네."
좋은 소식이다. Good News! 봄비는 약손이다.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다독여준다. 가느다란 봄비에 알록달록한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 옆으로 노란 산수유 꽃이 흐드러진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봄이다.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