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 후, 겨울이라도 해도 무색할만큼 뚝 떨어진 기온탓에 엄마는 아침 이른 외출에 겨울 외투를 꺼내입으셨다. 10분을 넘게 걸어 버스정류장 온열의자에 앉아 차가워진 두 손을 엉덩이 밑에 깔고 오뚝이처럼 엉덩이를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한기를 녹이는데, 옆에 앉은 엄마는 겨울장갑까지 끼고 계셨다. 역시 준비성은 우리 엄마 따라올 사람이 없지 싶었다. 그래도 가을 벙거지 모자 사이로 찬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며 겨울 털모자도 마저 꺼내야겠다고 하시는 걸 보면 눈 깜짝 하고 나니 어느새 겨울이 찾아왔나보다.
지난 주에는 2년 전 수술 하신 후 7번째 정기검사를 했고, 어제는 검사결과를 들으러 간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한파탓도 있겠지만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는 길은 매번 긴장의 연속이어서 더 춥게 느껴졌던 것도 같다. 소화기내과 과장이셨던 주치의 선생님은 이번 가을 병원장으로 취임하셨지만, 여전히 주치의 역할을 하고 계셨다. 그분의 실정은 모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의사 소개란에 '현 병원장'이라는 스펙이 한 줄 추가됐을 뿐이었다. CT, MRI, 간섬유화, 혈액검사 결과, 폐 전이도 없고 모두 좋다고 하셨다. 자동반사처럼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그런데, 심장 동맥혈관에 석회가 좀 보인다며 심장혈관병원에 협진을 신청해 진료예약을 잡아주시는 것 아닌가. 생각도 못하던 이야기에 당황스러워 엄마 뒤에 서서 휴대폰에 메모를 하기 바빴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가 4개월 후에 만나자고 하시는 교수님께 결국 병원장 취임 축하한다는 인사도 못하고 나왔다. 진료실에 들어갈 때부터 언제쯤 축하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을까 싶었는데, 뭐가 보인다는 그 소리에 축하인사를 싹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틀 후 잡힌 진료에서 나쁜 이야기를 듣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씩씩하게 엄마 앞에서 애써 결과가 다 좋다니 다행이라고, 콩나물 국밥이나 먹고 가자며 너스레를 떨었다.
언제부터인가 병원에 올 때면 으레 들르게 되는 밥 정거장 같은 국밥집에 들어서는데 이미 사람이 한가득이다. 병원 손님들이 반은 되겠고 다들 어떤 소식과 결과를 들고 밥집을 찾았는지 모르지만, 뚝배기에 담긴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호호 불어가며 몸을 녹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보였다. 사람 온기로 가득찬 식당에서 빈 자리가 없어 주저하고 있을 찰나, 식당 주인은 6인 테이블에 이미 식사하고 있는 손님 옆자리로 합석을 권했다. 수저통과 물그릇으로 금을 그어놓듯 테이블을 나눠써야 하는 두자리에 엄마와 나는 마주보며 앉아 늘 시키는 메뉴를 주문했다. 엄마는 황태 콩나물국밥, 나는 콩나물국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