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둘은 3박 4일의 모녀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잘'이라는 말에는 항상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번에는 '무사히'의 의미도 있고, 그 정도면 다행이라는 의미도 있다. 소월이와 집은 내가 잘 보고 있을테니 걱정하지 말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고 구경도 잘 하고 오시라는 아들의 응원을 받으며 미안함, 고마움, 긴장감이 섞인 채로 여행을 떠났다. 2시간이 채 안되는 짧은 비행 후에 도착한 일본은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은 듯 했다. 현지에서는 일본에 대해 아주 조금 더 아는 내가 가이드 역할을 하고 여동생은 엄마를 밀착해서 모시는 보디가드 역할을 맡기로 했다. 나는 몇 보 앞서 성큼성큼 걸으며 티켓을 수령하고 길을 찾아 '이쪽으로, 저쪽으로'를 외치며 가족들을 안내했다. 깃발만 들지 않았을뿐 완전 '일 모드'로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놓치는 것도 있었다. 엄마가 여행 전부터 사고 싶어했던 쇼핑목록이 그것이었다.
<사야 할 것>
예쁜 양산, 속옷, 손수건, 일제 텀블러
(일제가 좋다고 하신 품목 중 하나가 텀블러, 엄마 표현으로는 마호병, '魔法瓶(まほうびん)'임)
여행 첫 날, 숙소에서 가까운 관광지를 돌면서 첫 기념품샵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본풍의 양산이 있었고 엄마는 사겠다고 하셨지만, 즉흥적인 쇼핑으로 본 딸들은 극구 말리며 조금 더 구경해서 비교해보고 사자고 만류했다. 그렇게 몇 군데를 돌았지만 (딸들의) 마음에 딱 드는 게 없어서 내일 살 수 있다고 미뤘다. 다음 날은 구름끼고 흐린데도 아침부터 꽤 뜨겁고 더운 날씨여서 양산이 필요했는데 양산이 없었다. 아뿔싸. 오후에라도 양산을 사려고 했는데, (엄마) 마음에 딱 드는 게 없어서 결국 사지 못했다. 사고 싶을 때 살 걸 사지 못했던 엄마 눈에는 다른 양산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에도 양산을 찾아 다녔지만 결국 사지 못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남동생에게 썰을 풀었더니 한 마디 했다.
"누나들이 잘못했네. 감수성이 떨어졌네.
엄마들은 소소하게라도 사고 싶을 때 사고, 드시고 싶을 때 드셔야 되는데,
왜 누나들이 쇼핑하던 대로 하려고 했어? 하나 살 걸 두개 사면 되는걸.
엄마한테 무조건 맞췄어야지."
아차 싶었다. '맞네. 나, 감수성이 떨어졌었네.' 엄마를 위한 쇼핑을 했어야 했는데, 나와 동생을 중심으로 쇼핑하려고 했었다.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주도성이 확실한 엄마는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저지당해서 기분이 상하셨을 거다.
엄마를 모시고 간 첫 번째 해외여행에서는, '엄마'라는 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는 딸들이 되어야 겠다고 반성을 하며 짐을 풀었다. 그래도 남는 여행이어서 다행이다.
여행은 전반적으로 좋았고, 날씨는 꽤 더웠고, 마무리는 좋았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