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안방에 딸린 작은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신다. 변기에 세면대만 해도 꽉 차고 좁은데 굳이 샤워실로 이용하신다. 좀 더 넓고 편한 화장실을 딸들에게 양보하시려는 마음일까? 어느 날 엄마의 샤워실을 빌려 이용하는데 눈에 잘 안띄는 곳곳에 물때가 보이는 게 아닌가.
'엄마처럼 깔끔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이해가 안되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하려던 샤워를 접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저녁에 동생에게 엄마의 화장실 물때 이야기를 전하는데 동생도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는 괜히 이야기해서 자존심 상하게 하지 말자고 입을 맞췄지만, 한편으로는 깔끔쟁이 엄마의 변화(?)에 괜시리 속이 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종종 엄마에게 화장실 좀 빌려쓰자고 너스레를 떨면서 물때 청소 겸 샤워를 했다.
어느날 우연히 엄마가 쓰시는 다초점 안경을 닦고 잘 닦아졌는지 보려고 안경을 들다가 깜짝 놀랐다. 가까이 대보기도 전, 한참 멀리서부터 핑 돌며 어지러웠다. 엄마의 작은 화장실에 낀 물때가 생각나 한참 멍하니 있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엄마가 나이들어 가시는 것을 확인한 것 같아 가슴이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