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방학숙제로 일기를 쓸 때면 귀찮아하다가 일기가 밀리는 것이 싫어서 간혹 미리 일기를 쓸 때도 있었다. 하루의 일과를 쓰는 것이 일기인데, 일기를 미리 쓴다는 것이 말이 안되긴 하지만 그러기도 했다. 대신, 일기의 본연의 성격을 해치지 않으려고 일기를 미리 쓰는 날이면 일기에 쓴 내용대로 하루를 지냈다. 무슨 책을 읽었다고 쓰고, 정말 그 책을 꺼내읽는 그런 격이다. 방청소를 열심히 했다고 미리 써놓고 그 날은 정말 방청소를 열심히 하곤 했다. 그래서 일기를 미리 쓰긴 했지만, 일기대로 지냈으니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일기를 미리 쓴 것에 대한 괜한 찝질한 마음의 부담감을 덜어내곤 했었다.
지난 주, 엄마의 심장혈관의 석회화와 혈관 상태, 혈류량 등을 살펴보기 위해 심혈관 조영술을 해서 성모병원 통합수술센터에서 하루를 꼬박 보냈었다. 그날 나는 엄마가 조영술을 하는 동안 보호자 대기공간에 앉아서 노트북을 펼쳐 매일안녕을 썼었다. 기다리는 동안의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도 있고, 당일 퇴원하든 하루나 이틀 더 입원을 하게 되든 매일안녕을 발행하는게 쉽지 않겠다는 예상에서이기도 했다. 11월 17일자, 금요일 매일안녕을 쓰는데 나는 엄마의 결과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가 아무 이상없이 조영술을 잘 마쳤다고 해피엔딩의 글을 썼다. 레터를 쓰면서 어린 시절에 간혹 미리 썼던 일기가 생각났다. 그때는 그냥 일기를 밀리고 싶지 않지만 건너뛰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한가지를 보태고 싶었다. 그렇게 미리 쓰고 나면 그대로 될 거라는 믿음과 소망을 담아서 말이다. 다행히, 쓴 그대로 되었다. 담당 교수님의 '좋다'는 한 마디에 모든 긴장과 걱정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써놓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