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보다 더 늦게 이 봄을 느끼느라 지난 주부터 뒷산에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2월 중순 지나 아직 추웠을 때만 해도 산이 휑했는데 고작 한달 정도 지났을 뿐인데 벌써 피었다 지는 꽃이 있고 연한 초록의 잎사귀들도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다. 가지와 잎사귀 사이사이로 말라 비틀어진 철지난 잎들도 아직 붙어있다.
걸으면서 보니 작년 이맘때 엄마랑 함께 봉산의 절반까지 깔려있는 나무데크로 만든 무장애숲길을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그때도 엄마는 작년 묵은 이파리와 이번 봄에 새로 난 여린 잎을 가리키며 묵은 잎들은 곧 떨어질 거라고 했었다. 떨어진 지도 모르게 말이다.
'사는 것은 그런 건가 보다. 화창하고 따스한 새 봄을 맞이하며 새롭게 살자고 마음먹는 중에도 칼바람을 맞으며 보낸 지난 겨울의 아픔이나 상처, 외로움은 철 지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묵은 이파리처럼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끈질기게 붙어있다가 때가 되면 어느 샌가 떨어져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최선희, <엄마, 우리 살길 잘했다> 머리말 중
산책과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의 옷차림도 한결 가볍고 색도 울긋불긋 환해졌다. 누군가 가을 지리산에서 만나는 등산객들은 단풍보다 더 화려한 옷차림이라고 우스개소리를 했었는데, 오늘 만난 아주머니들의 옷차림이 딱 그랬다. 봄꽃보다 화려하고 예뻤다.
그래도 나는 화려하고 키 큰 꽃보다 작고 키 작은 들꽃에 더 관심이 간다. 발 밑에서 자라는 작은 꽃은 무릎을 굽혀 쭈그려 앉아야 하고 고개를 숙여서 자세히 들여다 봐야 잘 볼 수 있다.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 자체로도 예쁘고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