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우리 집 환경부 장관이다. 쓰레기 배출, 재활용품 분리수거, 커피박 말리기 등 중요한 일을 여럿 맡고 계신다. 동생은 재무부 장관이다. 지출할 때 꼼꼼해서다. 물건을 살 때도 친환경 제품인지, 포장재가 과하지 않은지 살피곤 한다. 전에 했던 일도 환경을 위한 캠페인 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동생에게 환경은 아주 중요한 관심사다.
우리 식구들은 환경을 지키는 일에 나름 진심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되기까지 갈등도 있었다. 쓰레기와 재활용품 분리수거에 대해서는 특히 그랬다. 재활용이 되고 저건 안되고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품목들이 있었고, 갑자기 새로운 포장재를 만나면 재활용 유무를 확인하려고 인터넷을 뒤적거리느라 버려지느냐, 포장재를 다시 살아남느냐의 기로에 한참 세워 놓곤 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나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 집의 환경부 장관을 정하는 게 어때? 여기 저기 찾아봐도 애매한 것은 그 사람이 검토한 대로 하는 거야. 우리 집 환경 정책으로 만들자."
쉽게 해버리면 될 일을 왜 이렇게 진지하게 만드느냐고 혹자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내내 중요하고 심각한 이슈였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집 환경 정책도 잘 자리잡혀간다. 아침에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신 후에는 물을 쫙 빼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햇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 널어 말린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뒤적거리며 꼬박 며칠은 말리고 비가 올 것 같으면 다시 집 안으로 들여놓는다.
지난 주 엄마와 모아놓은 커피박을 가지고 망원동 제로 웨이스트 샵에 다녀왔다. 지난번에 갖가지 플라스틱 뚜껑과 커피박을 양손 무겁게 가지고 갔다가 매니저가 인사는 커녕 우리를 귀찮아하고 퉁명스럽게 맞이하길래 무척 실망했었던 지라 망원동 가는 길이 살짝 신경쓰였다. 다행히 그날은 다른 사람이었다. 인사도 씩씩하게 받아주시고 커피박을 쏟는 것도 도와주어서 고맙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한말씀 하셨다.
"지난 번에 너무 실망을 해서 이번 마지막으로 오고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했는데, 오늘은 좋아해주시니 다행이네. 계속 모아야 하나?"
아무래도 커피박은 계속 모아야 할 것 같다. 환경부 장관의 결정이니까.
오늘은 식목일입니다. 예쁜 화분도 가꾸고 환경도 생각하는 푸른 하루 보내세요. |